바라본다. 눈앞에 무엇이 있든 수빈은 가만히만 바라본다. 입은 늘 닫고 있다.

곧잘 과묵하단 소릴 듣지만 침묵하는 습관이 천성일 수는 없다. 말은 없다기보단 가벼이 뱉지 않는 것에 가깝다. 생각이 떠오르면 수빈은 골고루 곱씹어 다듬는다. 그리고 온통 홀로 삼켜버린다. 목구멍 아래 끝없이 되새겨지는 문장들. 오랜 감정의 스펙트럼을 그리도 공들여 그는 모조리 소화해내고야 마는 것이다. 수빈이 운동 한번 않고도 쉽사리 키가 큰 까닭은 그렇다.

카이를 부르는 것은 바다를 입에 담는 일과 같다.

타고난 이름이 곧 바다라던 카이는 눈앞에 상어를 마주하고도 부드러운 감촉을 꿈꿀 줄 알았다. 닿은 유리창 너머 카이가 인사한다. 팔을 뻗으면 그대로 물길이 인다. 파도가 몸을 감싸 보호막을 만들어준다. 상어는 바다를 물지 않는다. 바다의 온화하게 일렁이는 손결을 기억한다. 상어를 보고 도망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쓰다듬으려는 것은 바다의 본능이다. 카이는 여태 쭉 바다에 머물러 있다.